[오마이뉴스 글:하성태, 편집:곽우신]
<더 플랜>의 제작자인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는 집요하게 물어왔다. 지난 대선 직후, 이러한 부정선거 의혹은 일종의 금기이자 동시에 '음모론'으로 치부됐다. 그 의혹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흑역사'라 할 만한 '부정선거'사에 대한 끝나지 않은 불신과 함께 낙선한 후보의 지지자들이 갖는 일종의 '불복'이 결합한 형태였다."그렇다면 (2012년 대선이) 부정선거였단 말이냐."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을 통해 수차례 이 문제를 제기했던 김어준 총수는 그 의혹의 불쏘시개 역할을 자임해 왔다. 20일 개봉을 앞둔 <더 플랜>은 이 질문에 답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다. 그 과정 자체가 꽤 집요하고 영화적으로 설득력을 갖췄다. 영화 안팎의 상황을 무시한다면, 한국 다큐멘터리 사상 유례 없는 문제작이 탄생했다. 지난 10일 기자 시사에 참석한 김어준 총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 영화는 철저하게 정황은 배제하고, 오로지 선관위가 발표했던 문서, 공식 숫자, 1만 3천여 개의 투표소, 251개의 개표소에서 공식적으로 발표되고 기록되고 현재 보관되고 있는 공식 숫자를 가지고만 분석했다. 철저히 통계적으로 접근했다. 그래서 통계적 용어로 설명해 드리자면 지난 2012년 대선은 통계적 관점에서 기획된 숫자가 발견되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
통계학, 중요하다. 개표는 숫자의 미학이다. 원래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한데, <더 플랜>은 지난 대선에서 그 숫자가 마법(?)을 부렸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마법이 존재한다면, 그 마법을 부린 세력이 존재하지 않겠느냐고 의심한다. <더 플랜>은 '음모론'과 결별하기 위해 이 통계학적인 접근과 결과 도출이 필수라 주장한다. 일단 <더 플랜>이 제기하는 '기획된 숫자'인 '1.5'의 미스터리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다.
합리적 의심은 필수다. 의심은 검증을 거쳐야 하고, 그 검증은 결과 도출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더 플랜>은 특히 해외의 통계학자들과 컴퓨터 전문가들에게 질문하고 답을 얻어 낸다. 먼저, 김어준은 말한다. 의심의 단초다.역누적과 시간 역전, 그리고 1.5
"문재인 후보에게 유리한 표는 막판에 열렸다고 해석될 수밖에 없는 현상. 전국 17개 광역시도 중 대구시를 제외한 전국적으로 일관되게 발생한다. 모든 지역에서 문재인에게 유리한 투표함은 나중에 열렸다. 문재인에게 유리한 줄 어떻게 알 수 있죠?"
이른바 '역누적' 현상이다. 개표 결과를 시간 역순으로 추적해 보니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투표함은 개표 초반, 문재인 후보에게 유리한 투표함은 개표 막판에 몰렸다. 기이하다. 비슷한 의심은 또 있다. 지상파를 비롯한 개표 방송의 지역별 결과 발표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아래 선관위)의 발표를 시간상 앞서갔다. 이건 '시간 역전' 현상이라 명명했다.
그렇다면, 지난 대선 당시 개표 결과에 어떤 흐름이 존재하는 건가? 부분적으로 수개표가 진행되고, 참관인들도 상당수 있는데 개표 결과를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가. 이러한 의심을 따라가던 <더 플랜>은 결과적으로 '미분류표'와 이를 걸러내는 기계인 투표지 분류기에 주목한다.
먼저 '분류표'는 분류기가 유권자들이 직접 투표한 투표지에 찍힌 기표형태와 위치를 정확히 인식, 정당과 후보자 별로 확실히 분류해 준 표다. 이에 반해 '미분류표'는 정상적으로 투표했지만, 기계가 걸러내지 못했거나 무효표로 인식했거나 혹은 어느 후보에게 기표한 건지 모르겠다고 처리한 투표지를 말한다. 다시 김어준 총수의 설명을 빌려와 보자.
"영화를 잘 이해하지 못한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 드린다. 일단, 미분류는 기계가 못 읽겠다고 토해낸 표인 건데, 그 비율이 전체 3.6%. 대략 110만 표를 기계가 읽지 못하겠다고 토해냈다. 미분류와 무효표는 다르다. 미분류는 분류를 못 하겠다고 한 거고, 무효는 그중에서 진짜 무효표를 말한다. 그런데 미분류표에 정상표가 100만 표나 섞여 있었다. 기계는 읽지 못한다고 했지만 정상표가 100만 표나 섞여 있었다는 거다.
그 정상표를 분류를 해보면 항상, 전국적으로 1.5라는 비율로 박근혜 후보의 표가 더 많이 나왔다는 거다. 그러니까 박근혜 후보의 정상표가 미분류로 1.5배 만큼 많이 나간 거다. 그리고 그 빠져나간 만큼, 다른 표로 채웠다는 거다. 다른 표로 채웠다는 것에 대해서는 몇 가지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다. 무효로 갔어야 할 표를 박 후보 표에 섞었을 수도 있고, 문재인 후보 표를 섞었을 수도 있다."
파괴력이 상당한 주장이다. 다시 한 번 정리를 해보자. 미분류표는 결과적으로 진짜 무효표와 정상표로 나뉜다. 미분류표 중 향후 정상표로 섞이게 된 표도 당연히 존재한다. 어찌됐건, 미분류표 중 두 후보 표의 비율이 '1.5'로 일정했다는 얘기다. <더 플랜> 제작진은 이 숫자의 진실을 검증하기 위해 4년의 시간을 들였다고 말한다.합리적 의심과 음모론 사이
"참고로 이 영화는 실제 촬영은 4~5개월이 걸렸고,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석하는데 4년이 걸렸다. 초반 2년은 전국에 있는 모든 투·개표소에서 정보 공유를 통해 모든 데이터를 받아내는 데 걸렸다. 이후 2년은 분석에 걸렸다. 3000만 명 이상이 2012년에 투표했고, 우리는 그 표를 전부 다 분석했다." (김어준 총수)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이를 위해 <더 플랜>은 투표지 분류기를 포함한 전자 개표기의 허점과 '1.5'에 대한 검증을 시도한다. 전자 개표기의 오작동이나 해킹 가능성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 올랜도에서 만난 변호사 클린트 커티스는 전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개표 조작 프로그램의 원본 코드를 만든 장본인이다.
2004년 미국 법사위원회의 공개 청문회에서 그는 "2000년 10월 선거 조작 프로그램 샘플을 만들어 톰 피니 의원에게 전달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그는 "누군가 개표 조작을 하려고 한다면 사실상 그걸 확인할 길이 없다"며 "반드시 수개표를 거쳐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밖에도 다수의 컴퓨터 프로그래머, 통계학자들이 "기계를 믿지 말라"는 경고를 보낸다. 지난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도 증언했듯, 전문가들은 손쉽게 바이러스를 심어 개표 결과를 뒤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더 플랜>은 공신력 있는 해외 전문가들의 조언을 토대로 '시간 역전'이나 '미분류표 1.5'의 미스터리 역시 전자 개표기라는 기계의 허점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전자 개표기는 단순히 '개표 기계'가 아닌 '개표 컴퓨터'와 같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2012 미스터리'와 '해킹 데모크라시'라는 챕터로 문제를 제기하고 의심의 과정을 거친 <더 플랜>은 본격적으로 검증에 돌입한다. '플랜'이란 챕터를 통해서다.
결정적인 역할은 두 명의 여성 통계학자가 담당했다. 전희경 조지아 서던대학 역학과 겸임교수는 데이터를 분석했고, 현화신 퀸즈 대학 통계학과 겸임교수는 가설을 세우고, 검증을 담당했다. 앞서 설명한 'K=1.5'의 법칙이 여기서 완성됐다. 현 교수는 최근 관련 논문을 발표하기까지 했다. 이 현 교수의 검증은 <더 플랜>이 마련한 '카운터 펀치'다.<더 플랜>의 검증... 결국 수개표 도입을 위하여
이 모든 가설과 검증은 '수개표'의 중요성과 '개표 컴퓨터'에 대한 회의로 수렴된다. '부정선거'의 흑역사는 역사적으로 또렷이 기록돼 있다.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이 부정선거에 대한 의혹은 상당 부분 사라졌다고 평가받았던 것이 사실이다. <더 플랜> 역시 그 점을 분명히 한다. 하지만, 지난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벌어진 디도스 공격이 광범위한 부정선거의 테스트일지 모른다는 의혹 역시 모른 척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더 플랜>은 개표와 관련한 해킹의 위험성은 상존해 있다고 공언한다. 2012년의 미분류표 '1.5'의 미스터리나 여타 현상들 역시 이러한 투표 컴퓨터의 미비점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당장 현실화 가능성이 있는 '수개표'의 부분적 보완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선거와 투표를 클린하게 치를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영화 막바지, <더 플랜>은 이를 위해 지난 대선 당시 쓰였던 전자 개표기를 입수, 어떻게 해킹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기에 이른다. 그 결과는, 물론 충격적이다. 그 실험에 참여한 시민들은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며 분통을 터트린다. 그럴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원칙과 민주주의의 룰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 플랜>은 누군가를 공격하고 낙인찍기에 몰두할 생각이 없다. 그저, 우리는 왜 룰을 지켜야 하는가, 선거와 개표에 관련된 기본 룰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역설한다. 최진성 감독이 헌법소원 끝에 전자 투표를 없애기까지 한 독일의 예를 자세히 설명한 의도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20일 개봉을 앞둔 <더 플랜>은 후원자를 위한 온라인 시사를 진행 중이다. 영화적인 의미와 함께 조기 대선을 앞둔 유권자들에게 투개표 과정에 대한 관심을 더 적극적으로 환기하기 위함이다. 심지어 <더 플랜>의 홍보 메인 카피는 "투표가 아니라 개표가 결정한다"다.온라인 공개 후 쏟아지는 반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선공개 이후 파장이 만만치 않다.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상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음모론자' 김어준에 대한 불신부터 통곗값에 대한 반박, 이 시스템을 관장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반론이나 취재 미비에 대한 지적들이 쏟아지는 중이다.
<자백>의 최승호 감독이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지적한 대로,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던 선관위의 반론이나 무대응을 좀 더 취재했어야 옳다. 통계학적으론 <더 플랜>의 '1.5'에 대한 가설과 검증이 맞아 떨어졌을 수 있지만, 투표지 분류기를 위시한 선관위의 개표 시스템에서 벌어질 수 있는 변수들 역시 고려되었어야 했다. '역누적'과 '시간 역전' 현상이 후반부 슬그머니 사라진 부분도 아쉽다.
그런데도, '음모론'이나 '진영논리'에 대한 선입견은 버려도 될 것 같다. 이미 영화계에서 잔뼈가 굵은 최진성 감독의 깔끔하고 매끄러운 연출력으로 완성된 <더 플랜>은 영화적으로 꽤 유려한 다큐멘터리임이 틀림없다. 영화 밖 현실, 즉 투개표 시스템의 보완과 과거 부정선거의 역사, 민주주의의 기본 룰에 대한 관심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을 만큼 말이다.
그래서, <더 플랜>이 "2012년 대선은 부정선거였느냐"에 대한 답을 주느냐고? 그 답은 김어준 총수의 답으로 대신한다. 이것 하나는 확실할 것 같다. 조금 과장하자면, <더 플랜>은 이번 조기 대선에서 투표장에 향할 의향이 있는 유권자라면 참고할 만한 이유가 충분한 영화라 할 만하다. 다만, 이 주장을 믿느냐, 마느냐는 오로지 당신의 선택이다.
"2012년 대선이 부정 선거였냐고 묻는다면, 2012년은 사람이 개입한, 통계적으로 기획된 선거였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다. 그리고 그러한 플랜은 이번에는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이 영화를 만든 목적이다. 1.5는 의견이 아니라 통계적인 팩트이고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