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셔, 그 작가가 목적지도 없이 낯선 길을 걷는데, 길을 잃는다는 말이 옳을까? 아닐 거야. 일부러 길을 잃는다는 건 낯선 곳에 자신을 풀어놓겠다는 어떤 의지나 의도일 거야.
나는 매일 낯선 길을 방황해. 새벽 일찍 일어나 길로도 걷고 길이 아닌 곳으로도 걸어. 주인을 잃어버린 유기견처럼 산을 쏘다니지. 빡빡머리 남자가 온
통 까만 옷을 입고 어슬렁거리니까 처음에는 동네사람들이 소도둑이라고 신고를 하는 거야. 그러면 몰래 실실실 내려오고. 아무래도 나는 길이든 뭐든
낯선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 낯선 곳으로 가서 뭘 하는 건 아니야. 그저 가만히 앉아 있어.
길을 잃는다는 건 내게는 일상이다.
이미 아는 익숙한 곳은 재미가 없다.
하지만 낯선 것들이 주는 두려움이 내게도 찾아오긴 하지. 커피도 내게 그랬어. 갈 곳 잃은 맛처럼 처음에는 쌉싸름한 이걸 왜 마시나 싶었는데 자꾸 마
시다 보니 맛있더라. 지금은 커피 없으면 죽겠어.
가끔 외국에 갈 때도 공항까지는 엄청 불안해. 그런데 사람이란 동물이 참 신기하지. 막상 가면 싹 잊어버려. 그러다가 또 새롭게 나가게 되면 처음처럼 낯설고 두려워. 결국엔 또다시 금세 적응하지만 말야.
낯선 것들이 주는 두려움 뒤에 새로운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야.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는 것도 어쩌면 길을 잃는 일이지. 우연한 곳에서 우연히 만나고, 그것이 소중한 인연이 되기를 바라면서 나는
조그만 종이에 명함을 그려주지. 만약 내일도 낯선길 위에서 예상치 못한 뭔가와 조우한다면?
외계인이어도 무척 반가울걸.
출처:이목을 화가의레터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