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부터 마흔여섯이 될 때까지 투병해온
악성 림프종 말기 환자 자현씨는 오늘부로 치료를 포기했다.
병원에서 마흔여섯이 포기하기엔 이른 나이라고 했지만
이제 그만 됐다 싶었다.
26년을 크고 작은 병에 시달려온 만큼 가족은 지쳐 있었다.
특히 자현 씨 곁을 누구보다 오래 지켰던
부모님과의 갈등이 심해져 있었다.
1남 4녀의 맏딸로 부모님 사랑을 온전히 받았지만
병치레가 길어지면서 자현 씨는 자현 씨대로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서로에게 솔직히 털어놓지 못했다.
온몸을 뒤틀게 하는 고통이 반복적으로 찾아왔다.
기억력이 떨어지면서 물건이나 약속들을 잊기 일쑤다.
부모님은 약 먹는 시간, 병원 예약 시간도 수시로 잊는 딸의
손발이 되어줄 수밖에 없다.
“가족들이 저를 안 보면 그 시간만큼은
절 잊어버리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자현 씨도 가족들을 편안한 마음으로 보고 싶다.
서로의 삶이 서로의 삶에 얽혀서 짜증 내거나 소리 지르지 말고
서로의 존재에 감사하면서 또 서로 안타까이 여기면서
하하, 호호 남아 있는 시간을 행복하게 보냈으면 좋겠다.
“고생시켜서 미안하다.”
“엄마가 왜? 엄마가 왜 미안해”
“내가 널 건강하게 잘 낳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 낳아서… 미안해.”
어머니는 자현 씨를, 자현 씨는 어머니를 꼭 안아준다.
미워했고, 사랑했고, 고마웠던 시간이 밀려온다.
처음 목을 가누고 눈을 맞췄던 순간, 첫걸음을 떼던 순간,
학교에 입학하던 날, 그리고 싸우고 화해했던 모든 시간들…
가족을 가족이게 만드는 것은 피를 나누었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시간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젊은 딸의 마지막을 가늠하는 늙은 부모에게
그 시간은 이제 사랑의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가족은 그렇게 서로를 기억해주는 존재다.
– EBS 다큐프라임 특별기획 ‘가족 쇼크’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