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 노원구의 한 초등학교 교실. 김모(10)군은 쉬는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자마자 ‘수학 익힘’ 책을 들고 친구들을 불렀다. 잠시 후 100원짜리 동전을 교과서 위에 올려두고 손바닥으로 쳐서 넘기는 ‘판치기’ 판이 벌어졌다. 손바닥이 부을 정도로 교과서를 내리치다 보면 1만원가량 잃고 따는 것은 우습다. 교과서 앞표지는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윤이 났고, 뒤표지는 너덜너덜해진 지 오래다.
‘도박판’이 된 교실
판치기는 ‘애교’다. 중학생 조모(14)군은 ‘달팽이 경주’를 즐긴다. 경주마에 돈을 걸 듯 달팽이에 돈을 걸고 배당금을 받는다. 달팽이가 실제로 경주를 하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달리는 달팽이를 응원할 뿐이다.
조군은 수업시간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책상 밑에 숨긴 채 ‘사다리 게임’을 한다.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승패가 결정된다. 스마트폰 화면을 한두 번 두드리는 것만으로 틈날 때마다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스마트폰은 도박판을 학생들의 손바닥 안으로 끌고 왔다. 초등학생조차 손쉽게 인터넷 불법도박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다. 도박 사이트 주소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유된다. 이런 사이트에선 미성년자라도 이메일 주소만 있으면 대부분 가입이 가능하다. 한 사이트가 문을 닫아도 금세 다른 사이트로 옮겨갈 수 있다.
아이들은 ‘단톡방’(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비법을 나누기도 한다. 배당과 승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나눈다.
한발 더 나가 내기 주제를 정하고 돈을 걸기도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부터 국회의원 당선자 맞히기 등 일상의 모든 일이 돈을 걸 수 있는 도박이 된다. 친구 사이에 수만원에 이르는 ‘베팅’이 오간다. ‘외상값’ 혹은 ‘빌린 돈’을 기록한 회계장부까지 등장하곤 한다.
스마트폰 도박은 청소년들에게 ‘또래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별다른 죄의식도 없다. 아이들은 이런 문화를 마냥 외면하기 힘들다고 한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듯 삼삼오오 모여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이 익숙한 풍경이 됐는데, 혼자 빠지기 어색하다는 것이다. 조군은 20일 “그저 돈 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친목도 다진다”며 “대박이 난 친구가 노래방을 쏘거나 떡볶이를 사기도 한다”고 말했다.
위태로운 ‘어린 타짜들’
“도박에 빠져 살았던 시간이 한스러운데…. 되돌릴 순 없겠죠?” 고3 수험생 송모(18)군은 지난 3월 경기도 한 신도시에 있는 집에서 나왔다. 불법 스포츠토토가 가출의 발단이었다. 평범한 학생이던 그는 ‘토토’로 수십만원에 이르는 돈을 따는 친구가 내심 부러웠다. 그렇게 슬그머니 ‘토토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용돈을 쪼개 1000원, 2000원을 걸었는데 재수가 좋았다고 한다. 갖고 싶던 신발을 가질 수 있었고, 친구들에게 ‘한턱’ 쏠 수도 있었다.
‘돈을 따는 맛’을 알아버리면서 송군은 점점 도박에 빠져들었다. PC방 컴퓨터 앞에 앉아 도박 사이트를 기웃거리는 시간이 늘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잃는 돈이 커졌다. 용돈으로는 부족해 학원비를 몰래 쏟아부었다.
이마저 모자라 어머니 통장에 손을 댔다. 몰래 인출한 300만원을 모두 잃고 나자 더는 집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두 달 동안 PC방을 전전했다. 무전취식으로 벌금형을 선고받고서야 송군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도박에 빠진 청소년은 다른 범죄의 유혹에 쉽게 노출된다. 부모 지갑이나 통장에 손을 대는 일은 다반사다. 절도나 인터넷 중고거래 사기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일선 경찰서 사이버수사팀 관계자는 “도박 빚 때문에 경찰서로 오게 된 청소년이 최근 들어 부쩍 늘었다”며 “장래 희망이 ‘토사장’(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 운영자를 일컫는 은어)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는 고등학생도 있었다”고 전했다.
한번 도박에 빠졌던 청소년은 성인이 되고 나서도 도박의 덫에 붙잡힐 위험이 높다.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의 ‘청소년 도박문제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이 된 후 합법 사행산업에 참여하겠느냐’는 물음에 도박중독 ‘문제군’과 ‘위험군’ 청소년은 각각 50.0%, 49.2%가 ‘그렇다’고 답했다. ‘비문제군’(33.2%)에 비해 크게 높은 수치였다.
신훈 오주환 임주언 권준협 기자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