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인근 국공립에 수용 계획"
"국공립 2시면 끝나 맞벌이 곤란"
학부모 "현실 무시 탁상행정" 불만
"폐원 때 받을 애들 상처 벌써 걱정"
“엄마, 우리 유치원 없어지면 선생님은 어떻게 돼? 친구들은?”
서울 도봉구에 사는 박모(38)씨는 얼마 전 여섯 살 아들의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유치원이 폐원키로 한 사실을 아이들까지 알고 있을 줄 몰랐기 때문이다. 이 유치원은 사립유치원 비리가 불거진 이후 벌써 세 차례 학부모에게 폐원을 통보했다. 유치원이 밝힌 폐원 이유는 원장의 건강 악화다. 도봉구에서만 이곳을 포함해 총 3곳이 같은 이유로 폐원을 예고했다.
이곳 학부모들은 새로운 유치원을 찾느라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박씨는 “아들이 선생님과 친구들을 좋아해 재원생만이라도 졸업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했지만 답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유치원 문에는 아이들이 그린 그림 20장이 붙어 있다. ‘친구들아 사랑해, 선생님 사랑해요’ 같은 글귀가 적혀 있다. 박씨는 “정부와 유치원이 합의되지 않으니 문제가 해결될 리 없고,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학부모와 아이에게 돌아온다”고 안타까워했다. 최근 사립유치원들이 폐원 의사를 잇따라 밝히면서 내년에 ‘유치원 난민’이 대거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9일 교육부에 따르면 현재까지 폐원 의사를 밝힌 유치원은 총 85곳. 교육청에 신고하지 않고 폐원을 고려 중인 유치원까지 합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현행법상 경영난이나 건강 악화 등의 이유로 유치원 문을 닫으려면 학부모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이 절차를 어기면 유치원 운영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하지만 유치원이 폐원을 고수하면 강제로 막을 방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사립유치원장들 사이에선 “3000만원 내고 폐원하는 게 속 편하다”는 말이 나온다.
교육부는 폐원이나 모집을 중지하는 사립유치원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인근 국공립 유치원에서 원아를 우선 수용하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한다. 국공립 유치원은 사립에 비해 돌봄시간이 짧고 통학버스도 안 다니기 때문이다. 5, 7세 자녀를 둔 이모(36·서울 진관동)씨는 “지금 유치원은 오후 5시30분까지 아이를 돌봐주는데 인근의 국공립은 오후 2시면 끝난다. 맞벌이 부부는 둘 중 하나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는 아이를 맡길 수 없는 환경”이라고 말했다. 유치원 폐원을 앞둔 또 다른 학부모는 “아이에게 ‘다른 유치원으로 옮기자’고 했더니 ‘엄마 말 잘 들을 테니 친구랑 떨어뜨리지 말아 달라’며 울더라. 폐원했을 때 아이가 상처받을 게 벌써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교육부가 새로운 대안으로 부모 협동형 유치원을 제시했지만 현장에선 ‘그림의 떡’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 경기도 하남시 예원유치원에 자녀를 보내던 학부모들은 폐원 통보를 받은 뒤 협동형 유치원 설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유치원으로 쓸 공간을 구하지 못해서다. 이 유치원에 다섯 살 아들을 보내고 있는 도유진(35·경기도 하남시)씨는 “경기도교육청과 하남시 등을 상대로 공공시설 임대 등 지원을 요청했지만 ‘검토해 보겠다’는 말뿐이다. 공공시설 임대나 재정 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지원 방안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정부와 유치원의 기싸움에 아이들만 피해를 본다고 하소연한다. 다섯 살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의 폐원을 통보받은 이모(40·서울 도봉구)씨는 “정부는 사립유치원을 옥죄기만 하고, 유치원은 죽기살기로 버티면서 문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며 “언제까지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져야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Copyrightⓒ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