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에서 사용하면 과태료 부과
유리잔 미처 준비 못한 업소 상당수
일부 고객들 “컵 잘 씻을까” 우려
환경부, 과태료 부과시기 조정 검토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 시민들이 매장 내에서 사용한 일회용 컵들이 쌓여있다.
31일 오후 서울지하철 시청역 인근 카페에선 손님이 앉아 있는 5개 테이블 모두 일회용 컵을 사용하고 있었다.
카페 점주는 “1일부터 카페 안에선 일회용 컵을 사용할 수 없어서 유리잔을 준비했다. 하지만 손님들이 일회용 컵에 너무 익숙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카페에서도 11개 테이블 모두 일회용 컵을 사용 중이었다. 이 카페는 유리잔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1일부터 커피전문점이나 패스트푸드 매장 안에서 일회용 컵을 사용하면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된다. 과태료는 면적과 이용 인원, 적발 횟수에 따라 5만~200만원이다.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지난 5월 24일 환경부와 ‘일회용품 줄이기 자발적 협약’을 맺고, 텀블러 사용 시 가격 할인, 다회용컵 권유 등을 시행했다. 스타벅스·커피빈·할리스 등은 텀블러를 지참하면 300원, 맥도날드·버거킹·
KFC 등은 200원을 각각 할인한다. 그러나 개인이 운영하는 소규모 커피전문점 등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 중구 서소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고모씨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손님이 ‘금방 나갈 거니 플라스틱 컵으로 달라’고 한 뒤 자리에 앉으면 대처할 방법이 없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피크 시간 ‘반짝 장사’에 지장이 있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충무로 인근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모(32)씨는 “대기업 인근이라 점심 피크시간에 100~150잔을 파는데, 설거지할 틈도 없고 일손이 부족해지면 매출이 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이런 규제가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부담이 큰 자영업자를 더 힘들게 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서울 마포구에서 커피전문점을 하는 최모(35)씨는 “음료 제조 시간 절약을 위해서도 일회용 컵이 좋긴 하다. 1인 가게는 머그잔에 음료 옮기는 일이 더해지는 것도 큰 부담”이라고 털어놨다. 그는 “최저임금도 오르고, 이래저래 돈 들 일이 많아서 골치 아프다”라며 “인건비 때문에 아르바이트생 근무를 줄일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컵 위생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는 소비자들도 있다. 도심 카페에서 만난 박세은(14)씨는 “유리잔을 잘 씻었는지 믿음이 가질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환경보호를 위해 꼭 필요한 정책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김순희(56) 씨는 “일회용컵 사용하는 게 낭비고 아깝다고 생각한다. 일회용 우산 비닐도 없앴는데 큰 불편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필요한 제도라도 곧바로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 명동 한 카페에 근무하는 김모씨는 “공문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시행할 거면 고지·교육 등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하지 않나. 카페만 환경 파괴 주범으로 만드는 모양새는 억울하다”고 토로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일회용컵 대신 개인 컵을 쓰게 만들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며 “금액 할인 같은 인센티브 정책과 홍보를 통한 문화 운동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소장은 “정부에서 실태조사를 할 때 머그컵을 비치하고 세척을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매장과 그렇지 못한 매장을 구분해 접근했어야 한다”라며 “과태료를 바로 부과하면 혼란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이명박 정부 때 일회용품 사용에 보증금 매기던 게 사라지면서 플라스틱 사용량이 폭발적으로 늘었다”며 “약간 불편하더라도 이런 플라스틱 소비가 계속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다만 정책 추진 과정에서 혼란을 줄이기 위한 속도 조절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환경부도 이를 의식해 과태료 부과 시기를 늦추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사전 점검 결과 일선 카페들의 민원이 많았다”라며 “단속을 할 지자체 담당자의 의견을 수렴한 뒤 과태료 부과를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김정연·이태윤 기자
중앙일보 .